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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인문학

성스러운 자연

by 교양인 2023. 10. 4.

성스러운 자연 _ 카렌 암스트롱

Sacred Nature _ Karen Armstrong


“우리는 이 행성을 구하는 투쟁에서
자연과 우리의 원초적 연결을 의식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자연의 성스러움은 인간 정신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자연 세계를 경험해 왔는가?

붓다, 맹자, 노자, 토마스 아퀴나스, 윌리엄 워즈워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성인, 철학자, 시인, 신비주의자, 예언자 들은 자연은 신성하며 신들은 자연 속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신의 현현이었고, 신성의 계시였다. 하지만 과학과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근대 세계가 열리자 자연과 신 그리고 인간은 분리되기 시작했다. 신은 자연 세계 ‘바깥의 존재’가 되었고, 자연은 인간이 얼마든지 개발하고 수탈할 수 있는 ‘자원’이 되었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지구적 생태 위기의 원인을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서 찾는다. 즉, 인간과 자연을 별개로 생각하는 인식에서 미증유의 위기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비극을 해결하려면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자연 세계와 맺어 왔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유교와 도교, 불교와 힌두교, 유대교와 이슬람교 등 인류의 정신을 형성한 종교적·철학적 전통을 살피며 인간과 자연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할 길을 찾아 나선다.

자이나교의 시대부터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대까지,
수천 년 인류 역사를 관통하여
자연의 성스러움과 경이로움을 찾아가는 지적인 여정

초기 기독교 수사들은 작은 흙 알갱이에서 신의 존재를 느꼈고, 이슬람 경전 쿠란은 자연이 알라가 준 최고의 기적이라고 가르쳤다. 자이나교도는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고통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고, 붓다는 내면의 영혼을 갈고닦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의 감정을 만물로 향하게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다. 왜 거의 모든 종교에서 ‘자연은 성스럽다’는 믿음이 생겨났을까? 자연과 신과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어떻게 인류의 정신에 뿌리내리게 되었을까?

이 책은 거의 모든 문화와 종교 전통에서 인간과 자연 세계의 관계를 동일한 관점으로 이해했던 이 놀라운 현상에 주목하면서 ‘성스러운 자연’이라는 개념이 인간 본성의 핵심임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생태 위기가 두려운 현실이 된 지금,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세심하게 계발해 온 자연을 향한 경의를 삶의 중심에 되살려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난제를 뚫고 나아갈 새로운 인식의 길을 열어준다.

“만물 모두가 내 안에 있다”고 여긴 맹자, 자연을 향해 “거룩하다”고 외친 욥, “주는 구름 속에 계셨다”고 말한 예언자 무함마드, “자연의 빛과 찬란함”에 관해 쓴 윌리엄 워즈워스까지 자기중심주의를 벗어던지고 자연의 성스러움을 향한 공경을 실천한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저자 특유의 깊은 인문학적 통찰이 담긴 유려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카렌 암스트롱은 종교 분야에서 몇 안 되는 박식하고 최고로 지적인 비평가다.”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생태 위기에 관해서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미 많은 논의가 나왔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우리에게 더 개인적이고 심오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우리가 아름답고 연약한 지구를 존중하는 법을 다시 배우려면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 The Guardian

“기후 변화에 관한 논의에서 중대한 공헌을 하는 이 책은 자연 세계를 우리 자신의 일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종교적 관점을 거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암스트롱은 파국에 직면하여 우리에게 영성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 - Chicago Review of Books

“기후 변화에 관해 독창적인 해석을 제공하는 놀라운 책. 종교 전통에 초점을 맞춘 폭넓은 연구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우리의 인간성이 자리 잡아야 할 곳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Publishers Weekly

 

우리 시대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전하는
자연과 인간의 성스러운 관계를 회복하는 길

2023년 7월 유엔은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지구가 펄펄 끓는’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에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폭염과 산불이 발생하는 횟수가 크게 늘었고 물 부족으로 식량 생산이 어려워졌으며 빙하가 녹아 높아진 해수면 때문에 인간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이제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엄중한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이 행성을 구하는 투쟁에서
자연과 우리의 원초적 연결을 의식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저서 《신의 역사》(1993년),《축의 시대》(2006년),《신의 전쟁》(2014년) 등을 펴내며 수십 년 동안 종교의 역할과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해 왔다. 나아가 암스트롱은 전 세계를 누비며 사회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양극화로 인한 불안과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종교의 원칙을 바로 세울 것을 주장하며 일상에서 동정심과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자비의 헌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성스러운 자연》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종교의 역할과 가치를 치열하게 질문하고 실천해 온 암스트롱의 또 다른 결실이다. 이 책은 기후 변화를 다룬 많은 책들과는 달리 유례없던 생태 위기가 발생한 이유를 과학적 근거에서 찾지 않는다. 암스트롱은 이 책에서 자원 재활용이나 정치적 항의만으로는 오늘날의 생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인류의 오랜 전통이었던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회복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성경·쿠란 등 종교 경전부터 <대학>·<중용>·<서명> 등 고전, 철학·종교학 문헌, 낭만주의 시인들의 작품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자연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행위가 인간의 본성에 내재돼 있으며 인류가 공통적으로 자연을 경험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암스트롱은 ‘성스러운 자연’이라는 개념이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 주요한 종교 전통과 철학 사상이 탄생했던 ‘축의 시대’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과 자연은 주요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는 것이다.

 

자연과 신 그리고 인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이 책은 총 10장에 걸쳐 종교적·철학적 전통이 자연 세계를 다루는 방식에서 핵심을 이루었던 개념을 살펴본다. 자신을 버리고 타인과 만물을 향한 존중을 실천할 것을 몸소 보여준 예수와 붓다의 ‘케노시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공자의 정신을 우주에까지 확장한 유학자들의 ‘황금률’, 극단적 고행을 거쳐 어떤 생명도 살상하지 않을 것을 삶의 실천으로 삼은 자이나교도의 ‘아힘사’ 같은 사상뿐 아니라 ‘동정심’ ‘자비’ ‘감사’ 등 오늘날에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덕목도 깊이 있게 다룬다. 각 장 마지막에는 오늘날의 생태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암스트롱의 구체적인 조언이 실려 있다.

과거의 종교적 관행과 규율에서 얻을 것이 많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심미적 공감 능력을 계발하고 행동과 사고를 이끌 윤리적 강령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는 늘 인간 본성의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주변으로 밀려난 자연 세계에 대한 공경심을 되살려내야 한다. …
‘축의 시대’ 동안 개발된 통찰과 관행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시 세계의 네 지역에서 생겨난 위대한 종교적·철학적 전통은 그후 인류를 양육해 왔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합리주의. 이 새로운 영성들은 서로 차이가 있지만 공통의 에토스를 공유했고, 결정적으로 인간과 자연 세계의 관계를 비슷하게 이해했다. 우리는 이 시기의 심오한 통찰을 완전히 넘어선 적이 없다. 이것은 종교적 교조를 믿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심각한 난제에 맞서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바꾸어줄 수 있는 통찰과 관행을 우리 삶에 통합하는 문제다. - ‘프롤로그’·28, 29쪽

 



태양신 ‘라’의 신성한 여행
이집트 신화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

오늘날 ‘신화’라는 말은 막연하게 진실이 아니거나 미신적인 것을 가리킬 때 쓰인다. 하지만 과거에 신화는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화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즉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신화에 담긴 통찰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었지만 직관적인 방식으로 중요한 진리를 전달하여 인간의 경험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과거에 신화는 기본적으로 삶의 ‘안내자’였다. 암스트롱은 신화가 자연 세계를 공경하는 삶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위대한 신화들은 성스러움에 물든 자연 세계를 보여주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는 우리에게는 낯선 자연 개념이 잘 드러난다. 이집트인들은 자연 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매일 신성한 것으로 기념했다. 그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매일 아침마다 어둠의 세계를 벗어난 태양신 ‘라’가 새롭게 태어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나일강의 연례적인 범람도 이집트인들에게는 세상의 핵심이 시원의 물로부터 솟아오르는 순간을 반복하는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여름마다 낮게 놓인 들과 늪지는 그 심연의 물로 돌아갔지만 매번 들은 변화하고 비옥해진 상태로 떠올랐다. 따라서 나일강은 해와 마찬가지로 신성했다. 자연은 기념해야 할 연이은 기적이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일출의 과학을 이해하며, 따라서 해가 뜨고 짐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자연적인 사건을 신들의 작용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해도 우리의 일상생활이 의존하는 자연의 복잡한 박자에 새로이 경이를 느끼는 법은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 156쪽

 

창 밑에 자라는 풀도 베지 않으려는 마음
자연에 관한 신(新)유가의 새로운 통찰

우주를 설계하고 지배하는 신은 먼 하늘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라고 여긴 근대 서양인들과는 달리, 중국의 유학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창조주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으로 가득한 우주와 한몸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송나라 때 발흥한 새로운 유교 학파를 일컫는 신유가는 불교의 선(禪) 사상과 도교의 자연 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연 세계에 생명을 주는 성스러운 힘을 향한 통찰을 계발했다. 성리학의 창시자 주돈이는 풀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이 같다고 여겨 창 밑에 자라는 풀도 베지 않으려 했다.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또 다른 사상가인 장재는 오늘날 중국 철학의 중요 문헌으로 다뤄지는 <서명>에서 신유가의 비전을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11세기에 중국은 연거푸 이웃들의 공격을 받았고 개혁이 시급했다. 대부분은 정부와 군의 변화를 주장했지만 신유가의 소규모 집단은 영적 혁명의 선두에 서서 신유교를 정치·사회 생활에 적용했다. 그들은 이 생활이 우주의 성스러운 원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 〈서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은 나의 아버지요 땅은 나의 어머니이며, 나 같은 미물조차 그 사이에서 친밀한 곳을 찾는다.” 이 한 문장으로 장재는 신유가의 비전을 압축했다. - 166~169쪽

 

신으로 받들어진 동물
고대 종교 제의에서 나타나는 희생 정신

기원전 9세기 동물을 제물로 바쳤던 인도의 종교 제의에서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당시 희생 제의는 제물로 바쳐진 동물에게 단순히 죽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제의 참가자가 동물을 매개물 삼아 자신을 신과 연결하는 신성한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제의의 마지막 순간까지 동물의 목숨을 살려야 했고, 꼭 죽여야 한다면 고통 없이 동물의 존엄을 최대한 유지하며 제의를 거행해야 했다. 암스트롱은 고대 인도의 종교 제의를 통해 ‘희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희생’은 단지 제물의 도살만 가리키지 않고 본래 의미는 ‘성화한다’ ‘거룩하게 만든다’는 뜻이며, 동물이든 사람이든 대상의 축성이나 신성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환경 위기와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과거의 종교 제의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태도를 다시 형성해야 하며 여기에는 희생이 포함된다. 우리는 이제 전처럼 태평하게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차를 몰지 못하고 석탄을 땔 수 없다. 미래에도 존속할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 내부에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경의를 깨워야 한다. 희생제를 드리는 사람이 보잘것없는 양을 성스럽게 여기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연 만물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여기에는 지속적인 노력, 마음의 진정한 변화, 규율과 헌신이 필요하다. - 115, 116쪽

 

“자연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라”
자연의 질서를 담은 이슬람 경전 ‘쿠란’

암스트롱은 이슬람교야말로 자연을 당연시 여기지 않았던 면에서는 으뜸가는 종교라고 말한다. 이슬람교에서 자연은 ‘쿠란’과 맞먹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졌다. 이슬람교의 경전 쿠란의 모든 구절은 하느님의 징표였는데, 자연의 모든 현상도 마찬가지였다. 아라비아의 엄혹한 기후는 충분한 식량을 제공하지 못했기에 이슬람교도는 늘 영양실조 직전 상태에서 살았지만, 그들은 자연의 질서를 알라의 최고 기적이라고 보았다. 이슬람교도는 쿠란을 통해 자연 세계에서 어디를 보든 신의 계시를 발견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이슬람교도는 유대교와 기독교 경전에서 기념하는 초자연적 기적보다 자연의 규칙적인 박자에서 훨씬 감명받는다. 쿠란에서 자연의 질서는 신의 힘과 지혜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 이슬람 영성의 핵심은 신에게 전심으로 ‘굴복’하는 태도인데 사실 자연 자체는 이런 태도의 최고 모범이다. 모든 피조물이 그냥 존재하면서 자연이 자신에게 하라고 명한 것을 함으로써 하느님을 찬양한다. … 이슬람교도는 자연의 규칙적인 박자에서 삶의 힘을 관찰하고 자연의 신성함을 인식해야 한다. “진실로 그 곡식과 대추야자 종자들에 싹이 돋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니라 … 그분이 하느님이시니라.” - 138, 139쪽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인도 자이나교 영성의 핵심 ‘아힘사’

아힘사(ahimsa, ‘무해함’)는 오랫동안 인도 영성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인도인들은 아힘사를 따라 타인에게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어떤 종류든 상처를 주는 것을 금했다. 아힘사를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들은 자이나교도였다. 그들은 모든 동물, 식물과 심지어 바위, 물, 불, 공기에도 영혼이 있으며 그것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마음속 심연에서부터 확신해야 했다. 이런 통찰은 실천적 행동이 마음을 재형성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 과정을 통해 이를 수 있었다. 자이나교도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자신이 만나는 모든 것의 성스러움과 연약함과 독특한 정체성을 의식했고, 자신을 강제하여 종일 매일 모든 것을 세심하게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감정 이입을 했던 자이나교도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

 

자이나교도는 하루에 두 번 스승 앞에 서서 “씨앗이나 녹색 식물이나 이슬이나 딱정벌레나 이끼나 축축한 땅이나 거미집을 밟아” 괴로움을 주었을지 모른다고 회개했다. 마지막에는 용서를 구했다.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나를 용서해주기를. 모든 피조물과 우정을 나누고 어떤 것에도 적의를 품지 않기를.” 자이나교도의 심오한 감정 이입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고통 속에 있음을 깨닫고 우리가 자신과 다른 종에게 끼치는 피해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 완벽한 자이나교도의 삶을 사는 것은 물론 우리 대부분에게 너무 벅찬 일이지만 우리의 행동을 반성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조심히 발을 딛고 살며시 물건을 내려놓고, 사물을 망치거나 버리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매일 만나는 모든 것의 생명력을 묵상해야 한다. 이 나무나 저 벌레는 어떤 종류의 실존을 누리고 있는가? - 181~187쪽

 

“에고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라”
붓다가 수행한 요가의 비밀

암스트롱은 우리가 “자신을 섬기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지를 타인과 자연에 강제하여 종종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자기중심주의야말로 자연의 성스러움을 경험하는 데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이다. 이 책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거의 모든 종교 전통에서 자기중심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즉 ‘케노시스(자기 비움)’가 진정한 영성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준다.

붓다는 흔히 요가 자세로 눈을 감고 앉아 영혼의 깊은 곳에 몰입한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요가의 목적은 마음의 평화나 고양된 집중력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핵심은 케노시스였다. 붓다의 요가는 자기와 이기심의 초월에 바탕을 두었고, 그 초월을 무자비하게 확장해 자연 속에 있는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느끼는 것이었다. 이 책은 케노시스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자기중심주의를 끊어내는 것은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한 긴 과정이다. 그러나 ‘완성된 인간’의 삶에서 중심을 이루는 케노시스를 일깨워주는 간단한 연습을 할 수는 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니다. 단지 우리 인간성의 본질적인 허약함을 짧고 날카롭게 일깨워주는 것이며 우리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고, 바라건대, 개선해줄 수 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 몇 분 동안 세 가지를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작은가. 다른 존재에게 친절을 베풀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너무도 자주 자기에서 시작해서 자기에서 끝나고 마는 우리의 욕망과 갈망은 얼마나 협소한가. - 134쪽

 

‘천상의 빛’에 물든 워즈워스의 자연
낭만주의 시인들이 본 자연 세계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기 영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이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근대 과학의 발전이 자연의 황폐와 인간의 소외로 이어졌다고 보았고, 자연은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시적 영감의 원천이자 성스러운 힘이 깃든 곳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근대의 정신은 자연과 멀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데카르트, 신을 “우주를 통제하는 중력”이라는 물리 현상으로 축소한 뉴턴과 달리 낭만주의 시인들은 자연과 신성은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시를 통해 워즈워스는 자연과 인간의 망가진 관계를 표현했고, 콜리지는 자연이 의식의 깊은 곳에 들어오려면 어느 정도의 침묵과 고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암스트롱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생태적 감수성이 오늘날의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시 <틴턴 수도원>에서 자연을 다르게 보도록 스스로 가르쳤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 세계에 본능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했으나 이제 그 깊이를 헤아리려면 더 집중해서 자연을 응시하고 묵상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 환경에 준 피해를 생각할 때 자연과 인간의 연결은 더욱 절실해졌다. … 간단한 행동부터 시작할 수 있다. 가령 헤드폰이나 휴대전화 없이 하루에 10분씩 정원이나 공원에 앉아 그냥 자연의 광경과 소리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것의 사진을 찍지 말고 대신 새, 꽃, 구름, 나무를 보고 그것이 우리 마음에 자국을 남기게 해야 한다. 워즈워스는 말한다. 우리에게는 학식이 풍부한 책이 필요 없다. 우리 감각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새에 자연의 비밀을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 69, 70쪽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

영국의 종교학자. 1944년 잉글랜드 우스터셔에서 태어났다. 1962년 열일곱 살에 로마가톨릭 교회 수녀원에 들어갔다 7년 만에 환속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런던대학에서 현대 문학을 강의했다. 종교학자로 삶의 방향을 바꾼 이후 《축의 시대》《신의 역사》《신의 전쟁》《붓다》《이슬람》 같은 논쟁적 저작을 발표했고, 《마음의 진보》 같은 울림이 큰 성찰적 저작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2008년에 종교 간 화해와 평화를 위해 활동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유 메달’을 수상했으며, 개개인의 동정심 회복을 위한 전 세계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테드(TED) 상’을 받았다. 2013년에는 문화 간 이해를 증진하는 데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나예프 알-로드한 세계문화이해 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2015년에는 ‘대영제국훈장’을 받았고, 2017년에는 에스파냐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투리아스 공주 상’을 받았다. 암스트롱의 저작은 지금까지 전 세계 4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정영목

번역가로 일하며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신의 전쟁》《축의 시대》《프로이트》《왜 쓰는가》《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비극》《미국의 목가》《로드》《제5도살장》《눈먼 자들의 도시》《불안》《마르크스 평전》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등이 있다. 《로드》로 제3회 유영번역상을, 《유럽 문화사》(공역)로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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