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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인문학

메리와 메리

by 교양인 2024. 4. 19.

메리와 메리  _ 샬럿 고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 해방을 외친 근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모녀의 삶을 함께 다룬 최초의 전기!

 


 

여성 해방을 외친 근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인간 본성의 심연을 보여준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 셸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모녀의 삶을 함께 다룬 최초의 전기

 

정치적·문화적 격변기였던 18~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영국에는 ‘메리’라는 이름을 가진 담대한 두 여성이 있었다. 어머니 메리와 딸 메리가 삶을 공유한 시간은 고작 열흘이었다. 딸을 출산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니는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또 다른 놀라운 여성의 삶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두 메리는 여성들이 직면한 불의에 도전했고, 세상을 변화시킬 중요한 책을 썼으며, 낡은 인습에 맞서 자유와 독립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실천했다. 바로 최초의 페미니즘 저서로 꼽히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와 그녀의 딸이자 과학 소설의 고전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1797~1851)의 이야기다.

메리 셸리는 평생 동안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했고, 어머니의 유산을 지키는 데 헌신했다. 아이를 낳고 열흘 만에 죽은 어머니가 어떻게 딸에게 그토록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까? 저자 샬럿 고든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급진적 사상이 작가로서 메리 셸리의 창작의 결의에 어떻게 불을 붙였는지 살펴보고, 《여성의 권리 옹호》와 《프랑켄슈타인》뿐 아니라 그들이 남긴 많은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어머니가 딸에게 남긴 문학적 유산과 페미니즘 유산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낭만주의 시대의 유럽, 혁명기 프랑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까지
시대를 뛰어넘어 두 여성이 나눈 아름답고 강렬한 지적 연대의 역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되던 영국 사회에서 관습을 깨부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다. 그 대가로 사후 한 세기가 넘도록 감히 남성의 영역을 넘본 타락한 여성, 읽을 가치가 없는 작가, 천재 시인 남편과 혁명가 어머니의 보조적인 존재라는 힐난과 폄하에 시달렸다.

이 책은 흡인력 있고 유려한 문체로 각자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를 절묘한 솜씨로 한데 엮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를 여성의 권리 증진에 헌신한 사상가,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되살려낸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프랑스혁명을 목격하고 쓴 정치철학서들은 토머스 페인, 존 애덤스 같은 혁명가들에게 널리 읽혔고, 《스웨덴에서 쓴 편지》는 윌리엄 워즈워스보다 앞서 낭만주의의 중요한 신조를 밝힌 책이었다. 메리 셸리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퍼시 셸리와 조지 바이런에 견줄 만큼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가였고, ‘우리 본성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일깨우는 소름 돋는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지상에 불러낸 창조자였으며,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의 독립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페미니스트였다. 이 혁신적인 전기에서 속박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두 여성의 격정적인 삶이 펼쳐진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평생 인습에 맞서 싸웠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엄청난 사랑뿐 아니라
증오도 포함한 개혁가의 인간애가 들끓고 있었다.”
_ 버지니아 울프

“메리 셸리는 새로운 문학 양식을 창조했다.
그녀의 작품은 지극히 여성적인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 SF에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있었던 셈이다.”
_ 조애나 러스(SF 작가, 비평가)

 


 

‘최초’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역사상 가장 용감하고 담대했던 두 모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에게는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삶을 구속하는 불공정한 인습을 맹렬히 비판한 페미니즘의 고전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최초의 페미니스트였고, 여성의 정치적 권리인 참정권을 처음으로 요구한 정치 사상가 중 한 명이었으며,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린 최초의 여성 작가였다.

울스턴크래프트의 딸 메리 셸리는 19세기 초 열아홉의 나이에 《프랑켄슈타인》을 세상에 내놓아 ‘과학 소설(SF, Science Fiction)’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의 시대를 열었고, 정복 · 권력 · 전쟁으로 대표되는 “남성적 가치가 세상에 초래하는 고통을 소설로 비판한 최초의 작가”였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 사후 1백 년이 훌쩍 넘도록 이 두 여성의 뛰어난 성취는 무시당했고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은 나약하고 비합리적이어서 스스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없다고 여기는 불평등한 시대에 두 모녀는 울스턴크래프트가 스스로 “무법자(outlaws)”라 부른 존재로 통했다. 그들은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족쇄를 깨뜨리고자 했고, 사랑과 자립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몸부림쳤으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글쓰기를 통해 당당히 자신을 증명했다.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메리 셸리 전기

《메리와 메리》는 역사상 가장 비범하고 담대했던 두 모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의 삶과 사상을 함께 다룬 최초의 전기다. 특히 메리 셸리의 전기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뛰어난 작가이자 재능 있는 이야기꾼인 저자 샬럿 고든은 《여성의 권리 옹호》와 《프랑켄슈타인》부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설, 에세이, 기고문, 일기, 연인에게 보낸 편지 등 두 모녀가 남긴 모든 문헌을 꼼꼼하게 살펴 불행과 역경에 용기 있게 맞섰던 놀라운 두 여성의 삶을 매혹적으로 그려냈다.
이 전기는 상류층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던 가난한 집안의 소녀 가장이 어떻게 ‘페미니즘의 성서’라 일컬어지는 책을 쓴 급진주의 사상가가 될 수 있었는지, 어머니와 평생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한 딸이 어떻게 어머니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아 문학사를 뒤바꾼 획기적인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드라마처럼 흡인력 있는 생생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혁명의 열기로 들끓던 18세기 파리와 런던, 급진적인 낭만주의 운동이 거셌던 19세기 영국 풍경이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진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두 모녀를 오랫동안 둘러싸고 있던 오해와 편견의 장막이 걷히고 열정적이고 용기 있는 두 메리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내 삶의 자랑이자 기쁨이었다” _ 메리 셸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를 따로따로 알고는 있지만 두 사람이 모녀 관계라는 사실을 발견하면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저자 샬럿 고든은 울스턴크래프트의 때 이른 죽음 때문에 그동안 많은 전기 작가와 학자 들이 어머니가 딸에게 끼친 강력한 영향을 간과해 왔다고 지적한다.

《메리와 메리》는 어머니가 남긴 문학적 유산과 페미니즘 유산을 정신적으로 공유한 두 모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동시대인들에게 받을 비난을 감수하고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고, 그들이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도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메리 셸리는 어머니의 사상과 용기를 따르고자 했고 어머니의 이상적인 딸이 되기를 열망했다. 이 책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의 생애에 교차하는 지점을 깊이 살피면서 두 여성이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어떻게 서로에게 가닿고자 했는지 밝힌다.

평등한 동반자, 낭만적 연애의 모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는 여성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고 법적으로 아무 권리가 없었던 시대에 남녀 간의 진실하고 평등한 사랑의 가능성을 찾고, 사랑이 동등한 존재 간의 결합이라는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분투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급진적 자유주의 사상가이자 아나키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윌리엄 고드윈과 결혼을 하고도 한집에 살지 않고 각자의 작업 공간에서 집필 활동을 하는 신혼 생활을 보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고드윈에게 “글을 쓸 사적인 시간을 확보할 권리”가 자신에게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결혼 관계에서 남편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했던 18세기에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영국 낭만주의 문학사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던 퍼시 비시 셸리와 열여섯 살 소녀 메리 셸리의 결합은 〈이슬람의 반란〉(1818)를 포함해 “낭만주의 운동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킨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모든 속박을 벗어던진 채 금기의 사랑에 뛰어들고, 현실 초월적인 열정을 중시한 낭만적 연애의 이상을 따른 두 사람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의 창작욕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고받았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는 자신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자신의 출세를 위해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전통적인 남성적 가치 체계를 비판했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직면해야 하는 불의와 고통을 폭로했다. 그들은 여성이 진정으로 해방되었을 때 얼마나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실례였다.

 

★ ★ ★ ★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시애틀타임스> 선정 최고의 책!

“18세기, 여성에 대한 억압을 비판하며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여성이 있다. 19세기, 과학 소설의 기원으로 호출되는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쓴 여성이 있다. 이 두 여성이 모녀 관계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리고 전자의 여성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후자의 여성 메리 셸리를 낳고 불과 열흘 만에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강렬한 정념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이 꽃피우는 시기에 태어나 세상을 관찰하고 글을 쓸 운명에 처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여성이 되기에는 너무 지성적이었고 사회의 한복판에 서기에는 안타깝게도 여성이었다. 어쩌면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을 기회 역시 죽음으로 사라졌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 운명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던 두 여성이 자신을 어떻게 형성해 나갔는지, 어떻게 그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는지 이 책은 매끄럽고도 강렬하게 보여준다.” _ 김겨울(작가)

“시대의 도덕률에 맞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던 두 여성의 삶을 이중으로 다룬 혁신적인 전기.” _ <파이낸셜타임스>

“세심하고 지적이며 깊이 있는 전기. 한 세기에 걸친 두 모녀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엮어낸 이 책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가 각자 직면한 비극적인 운명에 어떻게 맞섰는지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_ <선데이타임스>

“21세기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성 불평등 문제는 약 200년 전에 존재한 위대한 두 여성에 의해 다뤄지기 시작했다. 이 전기는 그들이 오늘날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잘 보여준다.” _ 아마존 독자

“내가 낭만주의에 관해 배운 것은 그 시대의 남성 시인들뿐이었다. 이 책은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라는 두 여성이 있었다는 진실에 눈을 뜨게 해준다.” _ 아마존 독자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
- 여성의 권리를 옹호한 최초의 자유주의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기념비적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1792)를 써서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외친 근대 최초의 페미니스트이다. 조지 엘리엇, 에마 골드먼, 버지니아 울프 등 후대 작가와 정치사상가 들은 울스턴크래프트의 삶과 사상에 깊은 영감을 받았고, 미국 여권 운동의 선봉자인 엘리자베스 스탠튼과 수전 B. 앤서니는 울스턴크래프트를 여성이 참정권을 얻는 데 공헌한 첫 번째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중시한 계몽주의적 가치관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은 인간의 범주에 들 수 없었다.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취급받지 못했고 정치적 권리는커녕 경제적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 당대 가장 진보적인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장자크 루소조차 “여성 교육은 항상 남성과 관련되어야 하며 … 남성의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여성의 의무”라고 말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고 그를 존경했지만, 루소가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러한 시대에 《여성의 권리 옹호》를 써서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독자적 존재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음을 최초로 주장한 사상가가 바로 울스턴크래프트였다. 《여성의 권리 옹호》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악폐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여성을 구원할 해결책을 제시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혁명적인 선언문이었다.

자유의 위대한 옹호자가 여성의 자유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를 메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메리는 루소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겠다고 결심했다. … 여성의 유일한 의무가 남성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신성 모독이며, 그런 의견은 성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신은 여성을 “남성의 장난감, 남성의 딸랑이가 되도록” 창조하지 않았다. 게다가 영혼에는 성별이 없으므로 남성 ‘그리고’ 여성은 모두 미덕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234쪽

 

 

“11월의 어느 음산한 밤에 나는 완성된 내 남자를 바라보았다”
- 열여덟 소녀는 어떻게 현대적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켰나

메리 셸리의 대표작 《프랑켄슈타인》(1818)은 어느 과학자의 실험으로 탄생한 괴물의 기이한 외형 뒤에 가려진, 괴물보다 더 끔찍한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파헤친 걸작이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메리 셸리는 불과 열여덟 살이었다. 그 전까지 소설을 써본 적이 없던 나이 어린 문학 견습생이 어떻게 인간 본성의 복잡한 심연을 탐구한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쓸 수 있었을까?
메리 셸리의 아버지이자 진보적인 정치철학자였던 윌리엄 고드윈은 딸에게 글을 쓰는 것이 그녀가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라고 가르쳤다. 당대 가장 급진적인 자유주의 사상가이자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부모에게 받은 유산은 메리 셸리의 정신과 문학적 감수성을 형성했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에 자전적인 요소를 담아내면서 부모와 가깝게 연결되고자 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에 사로잡힌 메리는 가급적 원고를 쓰는 일에 전념했다. 재주가 뛰어난 남성 벗들에게 주눅이 들기는커녕 작가가 됨으로써 자신이 물려받은 문학적 유산에 부응한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얻었다. - 262쪽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그녀의 삶에서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 죽었고, 자신이 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또한 메리 셸리는 퍼시 비시 셸리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여 아버지에게 거부당했고 사회적으로 비난받았다. 메리 셸리는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을 탐구했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이 창조자로부터 소외되면서 겪은 좌절과 고통을 탐구함으로써 인간 본성의 복잡한 심연을 파헤쳤다. 메리 셸리가 작품 속에 깊이 있게 풀어낸 생명의 창조, 진정한 인간의 자격, 고통과 소외 같은 주제는 현대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프랑켄슈타인》이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재생산되며 세기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불멸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메리는 아버지의 애정을 되찾으려는 또 다른 노력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아버지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머니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메리는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고드윈이 딸을 버렸듯이, 프랑켄슈타인이 자기 피조물을 버렸듯이 자신과의 관계를 끊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메리는 프랑켄슈타인이 아들을 배척한 결과를 자세히 묘사하면서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소설에 쏟아부었다. - 284, 285쪽

 

 

“위안을 준 것은 남편이 아니라 글쓰기였다”
- 여성과 글쓰기

여성이 공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았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저자는 글쓰기가 두 여성에게 생계유지의 수단이자 인습을 타파하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무기였다고 강조한다. 두 메리는 글쓰기를 통해 고난이 닥칠 때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여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스웨덴에서 쓴 편지》, 내면과 자아 탐구의 기록

권위를 과시하려고 격식을 차린 글을 발표했던 당대 남성 작가들과 달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관례를 깨부수고 독창적인 언어와 문체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다. 일종의 여행기인 《스웨덴에서 쓴 편지》(1796)는 이러한 문학 실험의 결실이었다. 이 책은 감성과 철학, 개인적 경험과 정치적 견해를 독창적으로 혼합한 울스턴크래프트의 글쓰기 방식을 가장 잘 보여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내적인 삶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언한 최초의 영국 작가였다. 울스턴크래프트의 혁명적 글쓰기는 이후에 나올 여행기 장르를 뒤바꿔놓았고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퍼시 비시 셸리, 로버트 사우디 등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마음은 실제 ‘존재’를 창조할 수 있고 ‘감정’은 ‘착상을 낳을’ 수 있으며 영감은 자아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서 나오고 … 이것은 낭만주의의 중요한 신조이고, 메리는 관례적으로 영국의 첫 번째 낭만주의 선언문으로 간주되는 워즈워스의 유명한 《서정 가요집》 서문보다 6년 먼저 낭만주의의 신조를 명료하게 표현했다. 사실상 《스웨덴에서 쓴 편지》는 감정과 주관성과 심리적 복합성을 ‘옹호한’ 책이었고, 낭만주의자들에게 새로운 글쓰기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 447쪽

 

 

자기 구원을 위한 글쓰기, 여성 해방을 위한 글쓰기

메리 셸리에게 글쓰기는 자기 성찰과 자기 치유를 위한 여정이었다. 아이 넷을 낳고 키우는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유산을 하고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도, 남편과 아이 셋을 먼저 떠나보낸 고통을 겪으면서도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메리 셸리는 “오로지 책과 문학적 일거리를 통해서 고통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 셸리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어머니의 사상을 폄하하고 흠집 내려는 사람들에 맞섰고, 모든 여성이 독자적으로 살아갈 때 생기는 이점을 옹호했다. 1835년에 출간한 소설 《로도어》는 이런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로도어》의 세계에는 영웅이 없다. 남성 인물들이 너무 나약해서 여성들은 서로를 위험에서 구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했다. 메리가 여주인공의 이름을 패니라고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패니는 메리가 자기 언니에게 원했던 인생을 살고 있었다. 패니는 스스로를 교육하고, 친구들을 돕고 그들에게 조언하며, 사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하면서 울스턴크래프트의 원칙—여성에게 자유를 주어라, 그러면 세상은 모든 이들에게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을 구현한다. … 《로도어》를 집필하는 작업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작품을 끝냈을 때 상처는 치유되었다. - 650, 651쪽

 


 


소녀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우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어머니를 아버지로부터 구하려고 수년간 노력한 이후 메리는 여동생(일라이자)을 위험에서 구했다. …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서 학교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더 절실해졌다. 소녀들의 몸과 마음을 계발하여 독립적인 여성이 되도록 가르친다면, 아내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독신 여성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유토피아에서는 일라이자 같은 여성을 구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여성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테니까. - 98쪽

존경하는 사상가의 딸과 사랑에 빠진 천재 시인 (메리 셸리)

퍼시 셸리는 메리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반쯤 사랑에 빠져 있었다. 거의 종교적 열정으로 존경한 두 정치적 자유의 지도자, 고드윈과 울스턴크래프트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이다. … 셸리는 메리를 사랑한 이유가 어떤 남자라도 경탄할, 설명이 필요 없는 그녀의 미모나 섬세한 매너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메리의 독창성 때문이었다. 그는 메리의 독창성이 ‘진정한 숭고함과 웅대함’에 있어서 자신의 독창성을 능가한다고 느꼈다. - 111~115쪽

“감상 소설은 여성 독자들에게 해롭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는 존슨이 서평을 맡긴 감상적인 소설들을 ‘쓰레기’라고 불렀다. 그 소설들은 여성이 남성에 의해 구조되어야 하며 여성은 자신이 할 일에 대해 남성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는 유해한 생각을 강조했다. 이것은 파괴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메리는 선언했다. … 메리가 소설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메리도 소설을 썼다. 메리가 분개한 것은 수많은 “끄적거리는 여성”들이 사용한 공식이었다. 걸핏하면 기절하는 처녀, 잘생긴 구혼자, 펄럭이는 무도회 드레스, 으스스한 성, 검은 망토를 두른 악당들은 “우리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오염시킨다”고 메리는 말했다. “왜 착한 여자는 항상 여섯 필의 말이 끄는 마차로 보상받아야 하는가?” - 195쪽

문학적 동지, 조지 고든 바이런 (메리 셸리)

바이런은 그토록 유명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인 이 젊은 여성을 만나는 데 흥미를 느꼈다. 몇 해 전에 《정치적 정의에 대한 고찰》을 칭송했던 바이런은 수입의 일부를 늘 금전적으로 어려운 고드윈에게 기부해 왔다. 바이런은 오랫동안 울스턴크래프트를 존경했다. … 메리와 바이런 모두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여기는 염세적인 시각을 공유했다. 바이런은 메리의 문학적 판단력을 신뢰하게 되었고 메리에게 자기 작품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종종 메리의 제안을 요청했다. - 217, 256쪽

프랑스혁명에 보내는 찬가, 《인간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울스턴크래프트의 패기를 시험할 첫 번째 사건이 그해 11월에 일어났다. 당대 최고의 휘그당 웅변가이자 작가인 60세의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비난했다. 이제 행동할 때라고 메리는 결심했다. … 메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온정주의적으로 대하는 영국 귀족들의 태도를 칭찬한 버크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메리는 버크가 영국 역사를 미화해서 요약한 것을 두고 그를 “자유의 벗”이 아니라 “재산의 옹호자”라고 비난했다. 메리는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개혁이 인류를 구할 것이다. - 203~205쪽

미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한 밤 (메리 셸리)

1816년 6월 15일, 이날은 저녁 늦게 시작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문학사에서 주목할 만한 날이기도 했다. … 창조와 인간의 본성, 이것이 그날 식탁에서 오간 화제였다. 이 주제는 오랫동안 바이런과 (퍼시) 셸리, 그리고 메리를 사로잡았다. 신이 생명의 창조자가 아니라면, 이 생각은 인간에게 힘을 되찾게 해줄 수 있었다. … 셸리는 인간이 생명을 창조한다는 생각에 즐거워했지만 메리는 후일 《프랑켄슈타인》 개정판 서문에서 이 원칙이 “지극히 두렵다”고 말했다. 메리는 인간의 가슴속에 악이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느꼈다. - 250~252쪽

정부의 폭정과 남성의 여성 억압을 연결하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가정의 영역과 공적인 영역, 가족과 정부가 연결되어 있다는 메리의 지적은 가장 뛰어난 통찰이고, 메리의 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향을 일으키는 핵심적인 이유이다. 메리는 여성의 권리 부정이 사회의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가부장제가 야기한 사회적 불의와 관련된다고 주장하는 현대 이론가들을 앞질렀다. - 341쪽

어그러진 연인 (메리 셸리)

(퍼시) 셸리는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를 완성하는 데 몰두했다. 그의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이었다. 그는 용감하게 신들에게 맞서서 인간을 위해 불을 훔쳤고, 인간이 발전하고 개선하고 결국 짐승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능력을 주었다. 이것은 메리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를 붙인 《프랑켄슈타인》과 정확하게 상반된 이야기였다. 메리에게 프로메테우스(프랑켄슈타인)는 반(反)영웅이었다. 그의 지식 탐구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고, 그의 야망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비관주의와 대조되는 낙관주의. 절망에 대조되는 희망. 메리와 대조되는 셸리. 두 사람은 각자 상반된 비극의 양쪽에 서 있었고, 그들의 갈등은 결혼 생활의 모든 면에 스며들었다. - 422쪽

“필요한 것은 오로지 훌륭한 상상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는 사실 문법과 문체에 관한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으므로 고드윈이 구문의 정확성과 전통적인 수사적 기교를 강조하면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언제나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엘리트 학교에서 교육받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훌륭한 상상력이다. … 메리가 취한 입장은, 여성들이 고전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신성한 문학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독창적이었다. 메리는 여성 예술가가 고드윈 같은 남성보다 더 대담한 혁신을 열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555, 556쪽

사랑과 야망의 투쟁 (메리 셸리)

메리는 마키아벨리가 신봉했고 그 이후 많은 정치가들이 채택한 가치를 공격했다. 마키아벨리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진실이 아니라 거짓을,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통치자를 주창했다. … 메리는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밝혔는데, 그것은 메리 이전에 어머니가 역설한 주장이었다. 남자들이 사랑이 아니라 야망에 이끌리면, 가족이 아니라 명성에 이끌리면 여성과 아이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 셸리와 멀어지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것은 그녀를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더 독자적으로 만들어주는 이점이 있었다. 메리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스승이자 영감의 원천은 이제 남편이 아니라 죽은 어머니였다. - 466~468쪽




지은이 _ 샬럿 고든(Charlotte Gordon)
미국의 작가이자 영문학자. 엔디콧대학 영문학 교수이며, 테들러인문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를 포함한 여러 언론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대표작 《메리와 메리(Romantic Outlaws)》(2015)는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때 이른 죽음 때문에 그녀가 딸 메리 셸리에게 끼친 영향을 간과해 왔던 다른 전기들과는 달리, 두 모녀의 삶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서술 방식을 통해 어머니와 딸이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서로를 어떻게 비추고 드러냈는지 획기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률에 맞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던 두 여성의 삶을 함께 다룬 혁신적인 전기”라고 평했다. 이 책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고, 2016년 〈시애틀타임스〉는 그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그 밖의 저서로 《Mistress Bradstreet》 《The Woman Who Named God》 등이 있다.

옮긴이 _ 이미애
영국 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교에서 강사와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지프 콘래드, 존 파울즈,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미들마치》 《밸런트레이 귀공자》 《노스트로모》 《올랜도》 《자기만의 방》 《등대로》 《엠마》 《설득》 《호빗》 《J.R.R. 톨킨 : 가운데땅의 창조자》 등이 있다. 《반지의 제왕》을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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