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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심리학

청년 루터

by 교양인 2025. 4. 7.

청년 루터 _ 에릭 에릭슨

Young Man Luther _ Erik Erikson

 


 

1945년 이후 서구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0권의 책 가운데 하나
〈더 타임스〉

 

불안으로 들끓는 청년 루터의 내면을 해부하는
정신분석 혁명가 에릭 에릭슨의 기념비적 저작

1505년 천둥 벼락이 내리치던 어느 날, 공포에 휩싸여 극심한 불안에 떨던 스물한 살의 학생 루터는 그 자리에서 수도사가 되겠다고 하늘에 맹세했다. 그리고 불과 10여 년 만에 기독교 세계를 뿌리째 뒤흔든 거대한 반역자, 자기 시대의 가장 뛰어난 웅변가, 무서운 카리스마를 지닌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청년 루터》는 20세기 위대한 정신분석가 에릭 에릭슨이 청년 마르틴 루터가 겪은 격렬한 내면적 갈등을 예리하게 분석한 ‘심리 전기’다. 에릭슨은 이 책에서 심리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독창적인 방법론을 구축해, 성경 강해와 《탁상담화》 같은 루터가 남긴 방대한 문헌을 조사하고 루터에 관한 가톨릭·개신교·정신의학·사회학 분야의 해석들을 가로질러,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대전환을 불러온 예외적 정신을 조명한다. 아버지에 대한 순종적이고도 반역적인 오이디푸스적 관계에서 시작해 과잉 순응으로 치달은 자기 처벌적인 수도원 생활,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극렬한 불안 발작, 교황청이라는 대타자와 벌인 목숨을 건 대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루터의 정신이 분출하는 결정적 장면들을 포착하여, 근대의 문을 연 역사적 인물의 심리적 초상을 순도 높은 통찰의 언어로 그려낸다.

 

악령에 시달리던 영혼은 어떻게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정신이 되었나?

에릭슨은 인간이 중대한 인생의 전환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정체성 위기’를 겪는다는 심리적 사실을 발견해 이론으로 정립했다. 이 책은 이 정체성 위기 이론을 메스로 삼아 청년기 루터의 삶을 해부한다. 내면의 격렬한 충동을 억누르며 부모의 뜻을 따르던 루터는 아버지의 소망을 거슬러 수도사가 된 뒤로 청년기 내내 극심한 죄의식과 혹독한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에릭슨은 루터가 폭발시킨 종교적 창조성의 밑바닥에서 이러한 신경증적 고통을 포착해 분석하고, 가톨릭에 맞선 루터의 신학적 투쟁을 비범한 청년이 그때까지 지녀 온 정체성을 벗고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하는 정신의 싸움으로 해석한다. 또 루터의 투쟁에서 동시대 르네상스인들의 인간중심주의를 발견하고, 프로이트와 다윈이 보여준 사상적 독창성의 선례를 찾아낸다. 더 나아가 루터의 불안과 분열 속에서 20세기 정치적 재앙을 불러온 아돌프 히틀러의 심리적 원형을 끄집어낸다. 이 책은 중세와 근대가 엇갈리는 이념의 격변기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정체성의 의미와 종교성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인간 루터에 대한 이해 지평을 넓힘과 동시에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의 해석 지평을 넓힌 기념비적 저작이다.

 

혁명가이자 반혁명가였던 ‘문제적 인간’ 루터

“루터는 기독교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환자다.” ― 키르케고르
“우리는 루터와 종교개혁에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 괴테

중세 로마 가톨릭의 권위에 맞서 16세기 종교개혁을 이끈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유럽 정신사의 지형을 뒤흔들어 근대 문명의 시작을 알린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다. 동시에 루터는 농민과 유대인을 향한 잔혹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앞장선 반혁명가이며, 종교적 권위에 저항하면서도 세속적 권위에 복종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루터를 둘러싼 평가는 첨예하게 엇갈려 왔다. “자유로운 근대 세계의 개척자”(헤겔), “로마의 폭정을 무너뜨린 헤라클레스”(울리히 츠빙글리), “자본주의 정신을 낳은 혁신가”(막스 베버)로 추앙받는가 하면, “악마의 제자”(토머스 모어), “르네상스를 망친 자”(니체), “나치의 반유대주의의 원조”(카를 야스퍼스)라는 날선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혁명가이자 반혁명가, 종교의 개혁자이자 권위의 수호자였던 ‘문제적 인간’ 루터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에릭 에릭슨은 《청년 루터》에서 자신의 정체성 발달 이론을 역사적 인물에 접목하는 대담한 시도를 펼쳐 보이며 역사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에릭슨은 루터를 과거에 박제된 화석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근대의 심연을 비추는 거울이자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정신의 창으로 바라본다. 에릭슨은 루터의 삶을 통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 정신이 어떻게 시대적 갈등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 갈등이 어떻게 역사적 전환을 이끄는지 날카롭게 통찰한다. 개인의 정체성 위기와 시대적 모순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한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혼란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이 있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심리학의 고전

에릭 에릭슨의 《청년 루터》는 1958년 출간 직후부터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정신의학자 로버트 콜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와 도널드 캡스는 이 책을 “역사와 정신분석적 통찰을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한 작품”, “깊은 만족감을 주는 심오한 연구”, “심리학적 종교 연구 분야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했으나, 주류 신학계와 역사학계에서는 “루터를 정신분석가의 상담 의자에 눕혔다”고 반발하며 에릭슨의 독창적인 시도를 격렬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가장 신랄한 비판자들조차 “어떻게 이토록 문제 많은 책이 이렇게 훌륭할 수 있는가?”(조지 린드벡), “결함이 있으나 선구적인 작품”(피터 게이)이라는 찬사를 보낼 만큼 에릭슨의 통찰력을 인정했다. 한 인물의 내면과 시대정신을 심리학적으로 통합한 에릭슨의 분석 작업은 이후 역사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으며, 피터 게이(역사학자), 앤서니 스토(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정신분석가)을 비롯한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현대의 전기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고 종교적 사유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이해하는 데 정신분석적 통찰을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한 작품이다. 에릭슨은 청년기에 대해, 청년기의 기회와 어려움에 대해 경이로울 만큼 가치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_로버트 콜스(정신의학자)

“매우 심오한 연구다. 전통적 신앙에 관한 분석에 거부감이 없는 이들에게, 그 접근이 악의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논쟁적인 의도를 품고 있지 않음을 이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매우 깊은 지적 만족감을 줄 것이다.” _라인홀드 니버(신학자)

“《청년 루터》는 심리학적 종교 연구 분야의 고전이다. 이 책이 고전인 이유는 독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이 책이 주는 새로운 의미를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_도널드 캡스(신학자)

“역사 문제를 정신분석으로 풀어내는 가장 도전적인 시도.” _프레더릭 크루스(문학 비평가)

“어마어마하게 풍성하고 유익하고 매혹적이다. …… 모든 행동과학자와 신학자에게 추천한다.” _Bulletin of the Menninger Clone

“특별한 자극과 매우 귀중한 유익을 선사하는 책이다.” _American Sociological Reven

 


 

루터의 불안 발작 - 정체성 위기의 징후

에릭 에릭슨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종교적 혁신을 이루기 전인 20대 젊은 수도사 시절, 극심한 신경증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루터는 미사 도중 불안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그의 증상을 두고 개신교는 신의 은혜로운 개입으로, 가톨릭은 영적 타락의 증거로, 정신의학은 생물학적 정신병으로, 사회학은 계급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에릭슨은 이와 같은 해석들이 루터라는 인물의 심리적 진실을 외면할 뿐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루터가 겪은 고통을 ‘정체성 위기’로 진단하며, 그가 처한 시대적 분위기와 훈육 환경, 그리고 개인적 기질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청년 루터의 동시대인 중 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루터는 20대 초반이나 중반 어느 날 에르푸르트 수도원 성가대석에서 갑자기 귀신 들린 사람처럼 날뛰며 헛소리를 하다가 바닥에 고꾸라져 “Ich bin’s nit! Ich bin’s nit!(그건 내가 아니야!)” 아니면 “Non sum! Non sum!(나는 아니야!)”이라고 황소처럼 울부짖었다. … ‘말 못 하게 하는 귀신이 들린 사람을 그리스도가 치유하시다’가 낭독될 때였다. _37쪽

 

성가대석에서 일어난 발작 이야기가 애초에 내 눈길을 끈 것은, “나는 아니야!”라는 루터의 말에서 발작이 매우 심각한 정체성 위기의 일부임이 드러난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이 위기 속에서 젊은 수도사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귀신 들린 것도, 병든 것도, 죄가 많은 것도 아니라고) 항변해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자신이 무엇인지 혹은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치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_60쪽

 

루터의 발작에는 성 바울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뿐 아니라 성인을 지향한 많은 사람들이 겪은 것과 같은 ‘종교적 엄습’의 몇몇 표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총체적 계시의 목록에는 압도적인 깨달음의 광명과 느닷없는 통찰이 언제나 포함된다. 하지만 성가대석에서 일어난 발작에서는 부분적 의식 상실, 운동 협응 상실,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터져 나오는 외침 같은 총체적 계시의 징후적 측면, 즉 더 병리적이고 방어적인 측면만 나타날 뿐이다. _62쪽

 

루터와 프로이트 – 고통에서 태어난 창조적 정신

이 책에서 에릭슨은 루터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청년기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한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의 천재들을 만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윈, 키르케고르, 프로이트, 조지 버나드 쇼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내면의 갈등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은 인물들이다. 에릭슨은 특히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와 루터를 겹쳐 보며 두 인물의 정신적 궤적에서 뚜렷한 유사성을 포착해낸다. 두 사람은 모두 ‘아버지 콤플렉스’와 싸우며 청년기 내내 내면의 문제에 깊이 몰두했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과 반복된 좌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의 심연에서 기존 질서를 뒤엎는 창조적 돌파구를 마련했는데, 루터에게서는 하느님과 직접 관계를 맺는 신학, 즉 프로테스탄티즘이, 프로이트에게서는 인간 정신의 무의식을 해명하는 정신분석이 태어났다.

내가 보기에 루터의 고유한 창조성은 프로이트가 ‘아버지 콤플렉스’와 벌인 결연한 투쟁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세 후기의 선구적 사례였다. …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각자의 시대가 요구하는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은 단호함이었다. 두 사람 모두 물질적·과학적 팽창의 시대에 인간 양심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_10, 11쪽

 

프로이트와 다윈을 비롯한 위대한 인물들이 가장 결정적인 업적을 이룬 것은 인생의 방향을 바꾼 뒤였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특별한 창조성에 이르는 돌파구의 시기에 신경증적 개입을 겪었다. … 위대한 인물은 아픔이나 실패, 광기를 자초해야 한다. 그래야 기성 세계가 자신을 짓이길지, 자신이 이 세계의 낡은 토대를 허물고 새 토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할지 시험할 수 있다. _74, 75쪽

 

이 책에서 나는 한때 겁에 질린 아이였던 루터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구하면서 어떻게 예수 탄생의 중심 의미를 되찾았는지 서술했으며, 프로이트가 자기관찰이라는 방법을 통해 인간이 유년기의 사랑과 분노에 얽매여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어떻게 인간 갈등을 잠재적으로 더 안전한 통제하에 두었는지 내비쳤다. 이렇듯 루터와 프로이트 둘 다 “아동이 중심에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자기관찰 기법을 다듬어 고립된 인간이 자신의 개별적 환자성을 인식할 수 있게 했다. _434~435쪽

 

지상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

루터의 아버지 한스 루더는 바깥에서는 모범적인 시민이었지만, 가정 안에서는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며 자녀들을 엄격히 통제한 권위적인 아버지였다. 루터는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순종적으로 자랐지만, 내면에는 두려움과 존경심이 얽힌 복잡한 감정이 커져 갔다. 에릭슨은 이러한 심리적 갈등이 루터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형성했으며, 이는 훗날 하느님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양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루터는 법조인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이 첫 반역은 아버지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적 진실성을 따르려는 욕구의 표현이었다. 그 이후 루터는 점차 불복종의 길로 나아갔고 마침내 교황과 그의 체제에 맞서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루터의 아버지는 모범적 시민이었지만 집에서는 양면성을 거침없이 내보였다. 자신의 기질을 최대로 발휘한 것은 자녀들에게서 그 기질을 없애려 시도할 때였다. 아버지가 자신을 처벌할 때 과연 독단과 악의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에 이끌리는지 마르틴이 의심한 원인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 초기의 의심이 훗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어찌나 거세게 투사되었던지 마르틴의 수도원 스승들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를 미워하지 않으신다네. 그대가 하느님을 미워하는 것이지.” _96쪽

 

자신의 강압적 우월을 애먼 곳에 써먹은 아버지,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정당화하지 못하면서도 남들에게 도덕적 열등감을 느끼게 만드는 수법을 구사한 아버지,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맞닥뜨렸을 때 마르틴은 어떻게 무력해지지 않으면서 복종하고, 무력화하지 않으면서 반항할 작정이었을까? _110쪽

 

루터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직자로서의 새출발을 한스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최종적으로 탈출하는 것으로 여겨 악담을, 그것도 그 자리에서 퍼부었다. “하느님, 저것이 유령의 미혹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 마르틴은 유아기 투쟁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순종을 놓고 벌인 투쟁이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놓고 벌인 투쟁이기도 했다. _245, 246쪽

 

내면의 혁명 – 죄의식에서 믿음으로 

루터는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던 중세적 신학에서 벗어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새로운 근대적 신학을 발전시켰다. 에릭슨은 이러한 신학적 전환이 1512년 루터가 신학 박사가 된 이후 시작된 성경 강의에서 예비되었다고 말한다. 깊은 영적 불안과 자기 확신의 결여 속에서 죄의식에 시달리던 루터는 스승 슈타우피츠 박사의 권유로 성서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 시기에 전통적 스콜라주의 신학의 틀을 넘어서 ‘믿음을 통해 의로움을 인정받음(이신칭의)’이라는 주제를 깊이 고민하며 자신만의 신학을 정립해 나갔다. 에릭슨은 루터의 신학적 독창성이 단지 교리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루터의 개인적 고뇌와 정체성 위기에서 비롯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의심 이전에 존재하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유아기적 신뢰 상태로의 회귀’라고 해석한다.

한때 루터는 갈등 증후군을 겪는 꽤 위태로운 청년이었던 듯하다. 루터는 영적 해법을 찾아냈는데, 때마침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치료 역량을 지닌 윗사람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었다. 루터의 해법은 서구 기독교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정치적·정신적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웠다. 이런 우연한 상황은 만일 매우 특수한 개인적 재능 발휘와 맞물리면 역사적인 ‘위대함’을 만들어낸다. _20쪽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시편에서 ‘주님의 정의로 나를 건지소서’를 처음 읽고 노래했을 때 저는 겁에 질렸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하느님의 정의’가 가혹한 심판을 뜻한다는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저를 가혹하게 심판함으로써 저를 구원하신다고요? 그렇다면 저는 영원히 죄에 빠져 살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영문을 알게 되었고 ‘주님의 정의’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정의라는 공짜 선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_344~345쪽

 

질투심 어린 야심을 품은 아버지에 의해 마르틴이 영아기 신뢰 단계에서, ‘엄마의 치마폭을’ 일찌감치 벗어났다는 해석은 타당하다. 아버지는 마르틴을 여성으로부터 조숙하게 독립시키려고 노력했으며 성실하고 듬직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키우려 애썼다. 아버지는 목표를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마르틴은 아버지의 정당성과 진정성에 격렬한 의심을 품게 되었고, 자신의 조숙한 양심과 실제 내적 상태 사이의 지속적 간극을 평생 부끄러워했으며, 유아기 신뢰를 느끼던 상황에 깊은 향수를 느꼈다. 그의 신학적 해결책은 모든 의심 이전에 존재하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영적 복귀와 더불어 세속 법의 칼을 불가피하게 휘둘러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복종이었는데, 이것은 그의 개인적 타협 필요성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_364쪽

 


 

에릭 에릭슨 Erik Erikson, 1902~1994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 정신분석가. ‘인간 발달 이론’과 ‘정체성 위기 이론’을 정립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덴마크 출신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과는 다른 외모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혼란을 겪었다.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예술가를 꿈꾸며 유럽 각지를 떠돌다 1927년부터 6년 동안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딸 아나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 훈련을 받았다. 1933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미국 최초의 아동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고, 이후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과 예일대학을 거쳐 1960년부터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에릭슨은 인간의 심리를 바라보는 관점을 프로이트의 ‘성’ 중심에서 ‘사회·역사’로 확장함으로써, 정신분석학뿐 아니라 역사학, 종교학,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의 여러 분야에 광범한 영향을 주었다. 1958년에 출간한 기념비적 저작 《청년 루터(Young Man Luther)》는 종교혁명가 마르틴 루터의 삶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들여다본 ‘심리 전기’다. 루터의 치열한 내적 투쟁이 어떻게 근대의 서막을 열었는지 탐구함으로써, 이 책은 ‘심리 전기’의 전범이 되었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1994년 영국 〈더 타임스〉는 “1945년 이후 서구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0권의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1969년에는 마하트마 간디의 삶을 그린 또 다른 ‘심리 전기’ 《간디의 진리》를 출간했고, 이듬해 이 책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유년기와 사회》 《정체성:청년과 위기》 《인생의 아홉 단계》를 비롯한 여러 저서를 남겼다.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지구가 더러워진다”라고 생각한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공저)을 썼으며, 《약속의 땅》 《세계숲》 《오늘의 법칙》 《향모를 땋으며》 《스토리텔링 애니멀》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7년 《말레이 제도》로 제35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번역상을, 2024년 《세상 모든 것의 물질》로 제6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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