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개/인문학

[깨달음 공부] 책 소개

by 교양인 2014. 1. 21.

 

깨달음 공부_보도자료.hwp

 

 

 

동서회통의 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철학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찾는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존재의 이유부터 죽음 너머까지, 다석 사상으로 풀어 가는 삶의 화두!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말과 글로 철학을 했던 최초의 철학자이자, 함석헌과 김흥호 등 20세기 한국 기독교 사상계를 이끈 지도자들의 스승으로 알려진 다석 류영모(1890~1981). 류영모는 기독교와 유교․불교․노장 사상을 넘나들며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공부하고 철저히 금욕적인 삶을 실천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욕망과 생사(生死)의 노예인 제나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인 얼나로 솟나야(거듭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깨달음 공부》는 다석 류영모와 그의 사상을 세상에 알리는 데 반평생을 바친 박영호(1934~ )가 오랜 시간 공부하고 실천해 온 다석 사상을 쉽게 풀이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류영모가 일평생 궁구했던 삶과 죽음과 깨달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다석이 세운 독자적인 종교 철학의 핵심을 보여준다.

 

 

《깨달음 공부》는 전체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는 누구인가’에서는 얼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2장 종교란 무엇인가’에서는 복을 비는 기복 신앙으로 전락한 현실의 기독교와 여타 종교를 비판하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영성 신앙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3장 생각하는 삶’‘4장 깨달음의 길’에서는 동물적 본능에 매여 사는 ‘제나’로는 죽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얼을 깨달아 진정한 나인 ‘얼나’로 솟나기 위해,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말한다.
‘5장 기도하는 시간’에서는 다석 류영모가 가르쳐준 기도의 의미와 기도하는 법을 알려준다. ‘6장 행복의 조건’에서는 부와 명예와 육체적 만족에서 느끼는 행복의 한계와 정신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 ‘7장 씨알의 나라’에서는 다석과 함석헌의 씨알 정신을 살펴본다. 예수의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다석은 땅 위의 임자는 ‘씨알’이라고 보았으며, 씨알을 억누르고 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들을 경계하면서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다석 류영모가 인정한 참제자 박영호가 팔순에 이르러 내놓은 얼의 소리! 

 

 

“예수가 남긴 말 가운데 가장 궁금한 말이 있다면 무슨 말일까? 이 사람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하겠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오 16:19)는 말이다.
이 구절은 복음서에 예수가 베드로에게 한 말로 나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는 누구 한 사람에게만 하늘나라 열쇠를 주려고 이 세상에 온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예수가 분명히 모든 사람에게 한 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면 그 하늘나라 열쇠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은 예수의 말씀에 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요한 18:37)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주기 위해 왔다는 말이다. …… 저 위에서 허락하시면 할 것이지만 이 사람의 할 일은 이 책, 《깨달음 공부》로 끝내고 싶다. 그동안 이 사람이 지은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머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는 바이다. 그동안 쓴 글도 사세(辭世) 아닌 글이 없지만 이번 글은 참으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썼다. …… 여러분께서도 이 글을 읽으시고 제나로 죽고 얼나로 솟나 죽음이 없고 다툼이 없고 결핍이 없는 얼의 나라에서 만나게 되기를 빈다.” - <머리말>에서

 

 

 

 

 


주요 내용 

 

‘나’는 누구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사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낳아주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오히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 같은 시련에 부딪히면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존재를 고민하는 데서 철학이 시작된다.

 

“우리가 나에 대해서는 의심을 안 한다. 그런데 이 세상이 괴로울 때면 나를 의심하게 된다. 나까지 의심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달라진다. 이렇게 아프고 괴롭고 한 이 나라는 게 뭐냐 하면서 나를 의심하여 나를 부정(否定)하게 된다. 심하면 나를 없애버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자살을 한다. 괴롭다 하면서도 이 세상 재미를 찾고 할 때는 아직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석가가 6년 동안 출가 고행을 한 것은 나를 의심해서다. 나를 의심하다가 어버이가 낳아준 이 제나(몸나)가 참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영원 절대한 얼나를 참나로 깨닫게 된다. 이게 깨달음을 이뤄 성불(成佛)하는 것이다.”(류영모) - 2장 종교란 무엇인가(62쪽)

 

 

류영모는 52세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잠을 깬 이다. 인생이라는 잠을 깬 이가 붓다(부처)이다. 그렇지 못한 이는 아직 잠자면서 꿈꾸는 이에 지나지 않는다. 샤머니즘적인 하느님을 아는 것은 깬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아버지이며 참나임을 깨닫는 것이 깬 것이다. …… 류영모는 우주의 임자인 하느님이 가장자리 없는 태허공에 거룩한 얼로 충만한 온통임을 깨달았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얼로는 하느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52세였다. - 1장 나는 누구인가(25쪽)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나면 삶의 목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류영모는 삶의 목적을 하느님에게 두어야지 땅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여기 이 제나는 거짓된 생명이다. 참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라는 것도 거짓이다. 하잘것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껏 찾아야 할 것은 오직 참이다. 참이란 생전(生前)을 두고 찾아야 한다. 일생뿐만 아니라 대(代)를 물려 가면서 찾아야 한다. 인류가 그칠 때까지 찾아야 한다. 전 인류가 다 힘을 쏟아서 마침내 알아내야 할 것은 참 하나일 것이다. 진리 하나뿐이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류영모) - 1장 나는 누구인가(33쪽)

 

 

 

 

 

 

“죽음의 종이 되지 말라.”

 

 

‘죽음’은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이다. 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을까?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류영모는 “죽음은 없다.”고 말하였다.

 

 

“죽음은 없다. 그런데 죽음이 있는 줄 알고 무서워한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육체적인 생각을 내던져야 한다. 죽음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 껍데기 몸이 죽는 것이지 얼이 죽는 게 아니다. 몸의 죽음을 무서워하고 싫어할 까닭이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 껍데기 몸이 퍽 쓰러져 못 일어나는 것밖에 더 있는가? 이 껍데기 몸이 그렇게 되면 어떤가? 하느님이 주신 얼생명은 영원하다. 얼은 하느님의 생명인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류영모) - 1장 나는 누구인가(35쪽)

 

 

류영모는 괴롭고 허무한 몸나의 삶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몸나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어버이로부터 받은 몸나는 가짜 생명이다. 우리는 참나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일이 얼생명인 참나를 찾는 것이다. 하늘나라에도 참나가 들어간다. 예수가 이르기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얼나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했다. 가짜 생명인 몸나는 죽어야 한다. 반드시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짜 생명인 몸뚱이를 연명시키는 데만 궁리하고 골몰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내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제나는 멸망의 생명이라 쓸데없다. 석가의 다르마, 예수의 프뉴마는 같은 하느님 아들인 영원한 생명이다.”(류영모) - 1장 나는 누구인가(42~43쪽)

“땅 위의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벌레가 이 우주 안에 없다고 해서 어떻다는 것인가. 지구도 달과 같이 생물이 없이 빤빤하게 있다고 해서 무슨 서운한 것이 있는가? 우주조차도 마침내 다 타버린다는 사상이 있다. 우리가 옷에 묻어 있는 먼지 하나를 털어버린다고 해서 누가 눈 하나 깜짝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인류를 털어버린다고 해서 무엇이 서운하겠는가? 똥벌레 같은 인류지만 생각함으로써 사상을 내놓아 여느 동물과 다르다고 하는데 이 사상이 문제이다.”(류영모) - 3장 생각하는 삶(141쪽)

 

 

 

 

 

 

거짓 믿음의 시대
- 깨달음 신앙과 복빎 신앙에 관하여

 

 

류영모에 따르면, 하느님이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인 얼을 깨달은 이로는 예수, 석가, 공자, 노자가 있었다. 하느님이 주신 얼을 공자는 덕(德)이라 하고, 석가는 다르마(法)이라 하고, 노자는 도(道)라 하고, 예수는 성령이라고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같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류영모는 예수와 석가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깨달은 스승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현실의 기독교와 불교는 예수와 석가의 본래 가르침을 잊고 예수와 석가를 우상으로 섬기며 복을 달라고 비는 샤머니즘으로 변질되었다. 류영모는 “기독교인들이 타율적인 교리에 얽매여 정말 종노릇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하였다.

 

 

“흔히 사람들은 내 정신을 어디에 매어놓으면 일이 잘될 것같이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정신을 붙들어 매어놓고 싶어 하지만 정신이란 어디 매어놓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마음은 자유로운 데 그 본질이 있다. 그 대상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라 해도 거기에 매여 살면 그 대상인 예수는 우상이 되고 내 정신은 내려가 죽게 된다. 내 정신은 하느님 한 분을 우러를 수 있도록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매여서는 안 된다. 매어놓지 말아야 할 것을 매어놓고 모으는 것이 아닌데도 모으려고 하는 것이 우상이다. 정신은 어디에다 묶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류영모) - 2장 종교란 무엇인가(81쪽)

예수와 석가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자율적인 신앙인이 되라고 하였다. 예수와 석가는 타율적인 종교 조직을 만든 일이 없다. 그 뒤에 생긴 조직적인 기독교와 불교는 예수, 석가와는 관련이 없다. 예수는 얼(보혜사)을 좇으라고 말하였고 석가도 얼(다르마)을 좇으라고 가르치고 세상을 떠났다. 예수와 석가는 후계자를 세운 일이 없다. 조직이 없었으니 후계자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과 얼로 교통하는 자율적인 신앙이 참된 종교이다. 조직에 이름을 올리는 타율적인 종교를 믿는 사람은 미숙한 신앙인이다. - 2장 종교란 무엇인가(111쪽)

 

 

여기서 저자는 예수와 석가가 몸소 보여준 깨달음 신앙과, 오늘날 대다수 종교의 모습인 기복 신앙의 차이를 ‘기원하는 대상’ ‘기원의 내용’ ‘기원의 방법’ 등 3가지 측면에서 면밀히 살핀다.
깨달음 신앙(자각 신앙)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만이 유일한 기원의 대상이며 하느님이 주시는 얼나를 깨닫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다. 그러나 기복 신앙에서는 세상 만물이 모두 기원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예수, 석가조차도 신앙의 대상,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버린다.
기원의 내용을 보면, 깨달음 신앙은 오직 하느님의 생명인 얼을 깨달아 하느님 아들 노릇을 잘하게 해 달라고 기원할 뿐이다. 이에 비해 기복 신앙에서는 현실의 부족과 결핍을 해소해 달라고 기원한다. 그러나 그런 기원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세상 사람들이 복과 화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나가 고통과 시련을 겪는 불행은, 제나가 참나가 아닌 거짓나임을 깨닫게 하려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나가 불행을 겪을 때가 제나의 거짓을 알게 되어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이 무상할수록 오히려 은혜로운 것이다. - 2장 종교란 무엇인가(90~91쪽)

 

 

마지막으로 기원의 방법에서는 깨달음 신앙은 명상 기도가 전부인 데 비해 기복 신앙은 제사를 지내거나 절을 하거나 주문을 왼다. 류영모는 예수, 석가가 가르쳐준 깨달음 신앙(영성 신앙)을 가리고 더럽힌 기복 신앙을 버리라고 깨우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부흥회를 해서 병을 고치고 돈이 쏟아지는 것이 얼이 아니다. 하느님의 생명인 얼나를 깨달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 아들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얼이다. 요새 교회가 얼을 팔아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사람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어서 얼의 권능이라 하는데, 요한복음 17장 2절에서 예수가 말한 얼의 권능이란 사람이 지닌 수성을 다스리는 권능을 말한 것이다. 이적 기사를 일으키겠다는 권능 생각은 아주 없어져야 한다. 요새 어떤 이들이 얼(성령)의 권능을 받아 사람 몸에 난 병을 고친다고 거들먹거리고 그의 뒤를 여인들이 따라다닌다는데 그것은 마귀의 짓이다.”(류영모) - 2장 종교란 무엇인가(111~112쪽)

 

 

 

 

 

 

 

 

차 례


머리말

 

1장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죽음 앞 최후의 화두
하늘로 머리를 두는 까닭

 

2장 | 종교란 무엇인가
하느님은 말씀으로 계신다
죽은 믿음의 시대
기복 신앙과 깨달음 신앙

 

3장 | 생각하는 삶
살아가는 이유
“죽음의 종이 되지 말라.”
생사를 넘어서는 생각

 

4장 | 깨달음의 길
없이 계시는 하느님
생명의 길, 죽음의 길
영성 신앙이 배척당한 이유

 

5장 | 기도하는 시간
홀로 고요히 기도하라
몸나의 신앙은 샤머니즘이다
신의 노예가 된 사람들

 

6장 | 행복의 조건
제나의 행복, 얼나의 행복
시련과 고난이 필요한 까닭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

 

7장 | 씨알의 나라
씨알이란 무엇인가
류영모와 함석헌의 씨알 정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얼의 씨앗을 품은 이들에게

 

 


 

 

지은이 박영호(朴永浩, 1934~) 



공업학교를 다니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나 열일곱 살에 헌병대에 징집되었다. 살벌한 전장에서 그는 죽이는 사람과 죽어 가는 사람, 죽은 사람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밤이 되어 눈을 감아도 해골과 시체들이 눈앞에 떠다녔다. 그렇게 신경쇠약에 걸려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며 방황하던 중 톨스토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톨스토이 전집을 다 읽고 난 뒤 우연히 〈사상계〉에서 함석헌 선생의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함석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톨스토이 사상에서 감화를 받은 사람임을 알아본 그는 곧바로 함석헌에게 편지를 쓰고 이후 40~50통의 서신을 교환했다. 1956년 천안에 농장을 마련한 함석헌 선생이 농사 짓고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지내자고 청하자 그곳으로 곧장 달려가 스승과 함께 생활하였다. 낮에는 과수원에 똥거름을 주고 밭을 매는 고된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성경, 톨스토이, 사서삼경, 고문진보, 간디 자서전을 같이 읽고 토론한 시간이 3년이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농장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겐 영적으로 새로 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되었을 때, 그를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줄 새로운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1959년 함석헌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늘 “농사 짓는 사람이 예수”라고 말하며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던 다석 선생처럼 제자 박영호도 농사 짓는 일을 양심적으로 참되게 사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는 경기도 의왕에 6천 평 농장을 개간해 밭을 일구면서 짬짬이 책을 읽고,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YMCA 연경반(硏經班)에서 류영모의 강의를 듣고, 댁으로 찾아가 다시 가르침을 받으며 5년의 세월을 보냈다.

1965년 어느 날 스승이 ‘단사(斷辭)’라는 말을 꺼냈다. 이젠 스승을 떠나 독립해 혼자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스승을 떠난 그는 5년간 이를 악물고 혼자서 공부해, 정신이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을 세 가지로 정리한 그의 첫 책 《새 시대의 신앙》을 출간했다. 그 무렵 류영모 선생으로부터 ‘졸업증서-마침보람’이라 쓰인 봉함엽서를 받았다. 다석 류영모의 참제자로 인정한 것이었다. 스승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했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그 뒤 류영모는 박영호에게 자신의 전기 집필을 맡겼다. 1971년부터 준비한 다석 전기는 1985년에야 책으로 나왔다. 스승이 읽은 책을 모두 독파하고, 스승이 살아온 이야기를 구술받고, 스승이 평생 써온 일지를 필사하면서 10년 자료를 준비한 후 스승이 돌아가신 1981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만 14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박영호는 지금껏 다석 류영모에 관한 책을 열 권 넘게 써 스승을 세상에 알렸다. 류영모 전기인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외에도 《다석 류영모 어록》《다석 류영모 명상록》《다석 류영모의 얼의 노래》 《다석 마지막 강의》 등이 있고, 〈문화일보〉에 다석 사상에 관한 글을 325회 연재한 후 이를 묶어 〈다석사상전집〉(전 5권)을 간행하였다. 또 《잃어버린 예수》《메타노에오, 신화를 벗은 예수》《다석 류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등을 썼다. 지금 그는 다석 사상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절실한 ‘다석 류영모 낱말 사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앎과 삶이 하나로 일치한 우리 겨레의 큰 스승,

다석 류영모(1890~1981)



다석 류영모는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시대를 앞선 종교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5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꺄 19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음 세례를 받고 몇 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하는 등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 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알(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단순하고 소박한 금욕의 삶을 살고자 했던 류영모는 50살 무렵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얇은 잣나무판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그 위에서 잤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모은 《다석일지》는 그가 쓴 유일한 저술로 남았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45살 때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 나이를 햇수로 세지 않고 날수로 하루하루 세었는데, 33,200일을 살았다.


생전에는 함석헌의 스승으로만 알려졌으나, 지금은 독특한 신관과 인생관을 지닌 철학자로서 다석 류영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 다석학회가 만들어진 데 이어 2007년 10월 5일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철학자들과 종교학자, 재야 학자들이 모여 ‘재단법인 씨알’을 만들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