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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인문학

[다석 마지막 강의] 책 소개

by 교양인 201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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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마지막 강의(보도자료).hwp



일평생 수도(修道)와 교육에만 힘을 쓰며 

진리를 좇아 마침내 큰 깨달음에 이른 대사상가,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 같은 한국 기독교를 이끈 '지도자들의 스승',

기독교, 유교, 불교, 도교에 이르는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와 철학에 두루 통달하여

넓고도 깊은 독창적인 종교 사상을 세운 다석 류영모.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육성을 듣는다!






다석 류영모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육성

폐부를 찌르는 다석 사상의 정수!


2008년 7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에서 함석헌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소개된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류영모는 우리 말과 글로 철학을 했던 최초의 사상가이자, 기독교를 큰 줄기로 삼아 유교, 불교, 노장 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두루 통달하여 마침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종교 사상의 체계를 세운 우리나라의 대표적 철학자이다.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임을 말한 다석의 종교 사상은 21세기 들어와 종교 간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을 가능하게 해줄 희망과 대안의 사상으로서 세계 신학계와 철학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다석 마지막 강의》는 다석 류영모가 여든한 살 때인 1971년 8월 12일부터 일 주일간 전남 광주에 있는 자생적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서 수녀와 수사들에게 한 강의의 녹음 테이프를 글로 옮기고 류영모의 직제자 박영호가 풀이한 것이다. 일평생 삶과 죽음을 궁구하며 진리를 좇은 대사상가가 들려주는 폐부를 찌르는 간결하고 명료한 진언 속에서 다석 사상의 핵심을 만날 수 있다.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을 하나로 꿰어 낸 제소리!


이 강의에서 류영모는 《맹자》와 《중용》, 《주역》, 구약과 신약 성경, 불경을 두루 아우르며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임을 보여주는 일원다교(一元多敎)의 사상을 펼친다. 또한 류영모는 예수와 석가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본받을 스승이라고 말한다. 예수와 석가도 하느님을 신앙한 이들이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와 석가처럼 하느님을 신앙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수와 석가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말고 예수와 석가의 하느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다석 마지막 강의》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예수와 석가처럼 큰 깨달음에 이른 몇 사람만이 냈던 독창적인 '제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다석 강의 녹음 테이프 가운데 음질 상태가 좋은 5개의 강의를 골라 MP3 CD로 만들어 책에 첨부하였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진리를 말하는 류영모의 맑고 굳센 목소리가 시종일관 청중을 압도한다.


죽음을 앞둔 다석 류영모의 마지막 강의, 40년 만에 빛을 보다!


다석 류영모는 독특한 종교 철학을 세운 사상가이자 동서고금의 많은 사상과 철학에 달통한 석학이었지만 매일 기록한 《다석일지》 외에 다른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현재 다석과 관련된 책들은 다석이 직접 구술하거나 쓴 것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려는 제자들의 기록이거나 다석 사상 해설서가 전부이다. 그나마 다석이 1956~1957년에 걸쳐 서울 YMCA에서 행한 연경반 강의의 속기록 전문을 다듬어 출간한 《다석강의》가 다석의 육성을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석 마지막 강의》에서 다석 류영모 자신이 직접 들려주는 다석 사상의 정수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81세의 나이로 죽음을 앞둔 다석 류영모가 '동광원'이라는 금욕 수도 공동체에서 마지막으로 한 대중 강연의 녹음 테이프를 녹취해 풀어 쓴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다석 류영모의 장사선언(將死善言)을 듣는다. 류영모가 귀수(貴壽)에 이른 1971년 8월 15일 광복절을 끼고서 일 주일간 빛고을(광주)에 있는 동광원(東光園) 수사, 수녀들에게 특강을 하였다. 81살로 사실상 고별 강의였다. 종강이라는 말을 내걸지는 아니하였으나 류영모의 강의 내용을 보면 류영모의 '죽음의 선언(善言)'인 '백조의 노래'임이 잘 드러나 있다. 류영모는 그 뒤 3년 후에는 절언(絶言)하고 절필(絶筆)하였다. …… 류영모의 동광원 녹음 테이프는 대단히 소중한 자료다. 생전 류영모의 강의를 듣지 못한 이들이 녹음으로 류영모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머리말'에서


동광원 강의 녹음 테이프는 그 발견 자체가 일대 사건이다. 애초에 동광원에서 이루어진 고별 강의를 서울 쪽의 제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다석의 강의를 동광원의 수사 김용래가 녹음했다는 사실이 20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려졌다. 류영모의 말씀을 가장 먼저 녹음한 곳은 KBS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1959년 12월 8일에 13분 동안 요가 운동에 관해 녹음을 했는데, KBS에 문의한 바에 따르면 녹음 테이프는 보관되어 있었으나 음질이 훼손되어 들을 수 없다. 그밖에 몇 사람이 다석의 강의를 녹음하였으나 분실되었다. 결국 동광원 녹음 테이프는 류영모의 육성이 담긴 유일한 자료로서 대단히 가치가 높다. 가공되기 전 원석과 같은 《다석 마지막 강의》는 다석 사상을 연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책이 될 것이다.

동광원 강의 녹음 테이프의 진정한 가치는 다석 류영모의 가르침을 다른 이의 손과 머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들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마지막 고별 강의에서 류영모는 일체의 군소리를 떨어버리고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하게 진리를 이야기하는, 최고 경지에 이른 사상가, 영성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불구불 굽이를 지나거나 곁길로 나가지 않고 오로지 앞을 향해 시원하게 뚫린 큰길로 성큼성큼 걸어가 곧장 핵심으로 들어가는 다석의 육성 강의는 다석 사상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스승을 직접 뵐 수 없는 목마름을 풀어줄 해갈의 물줄기가 될 것이다.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드넓게 열린 다석의 종교 사상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 시대를 앞선 열린 종교관

류영모의 종교관은 일원다교(一元多敎), 즉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류영모는 평생 예수를 스승으로 섬겼으나 성경을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석가, 노자, 장자,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등 인류 역사에 등장한 모든 성인들을 두루 좋아했다. 《다석 마지막 강의》에서도 《주역》의 겸괘를 통해 겸손의 덕을 배우고 《맹자》에서 석가와 예수의 말씀을 읽는 류영모를 만날 수 있다.


맹자가 말하였듯이, 사람은 마음을 다 가지고 있지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마음을 다 그대로 쓸 줄 알아야 해요. 가진 마음을 바로 써야 합니다. …… 이왕 이 마음을 쓰려면 마음을 다해서 써야 해요. 마음을 다 쓸 거 같으면 자기 바탈, 자기 천성이 뭔지를 안다, 마음을 다 쓰지 않으니까 그렇지 타고난 마음을 죄다 꺼내 쓰면 하늘이 내신 천성이 거기에 들었다는 거예요. 이게 성경 말씀 아닙니까? 타고난 마음을 죄다 쓰면 종당 하느님이 주신 천성, 곧 내 원 바탈을 안다는 얘기예요.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 3장 '바탈을 길러 하늘을 섬긴다'82~83쪽에서


류영모는 깨달은 이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좋아하였다. 예수를 좋아하듯이 노자, 장자를 좋아하였고 공자, 맹자를 좋아하였다. 다석 사상의 관점에서 종교 간 구분과 갈등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이들의 미혹일 뿐이다.

하느님은 온통[全體]이시다. 하느님의 자리에 서면 남[他, 敵]이 없다. 모두가 하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온통에 이르지 못하고 부분(部分)에 갇혀 있다. 이것을 미혹(迷惑)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만 하나이다. 우리 혈연만 하나이다. 우리 지역만 하나이다. 우리 민족만 하나이다. 우리 종교만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혹에 빠진 것이다. 예수는 미혹을 벗어버리고 온통에 이르렀다. …… 그런 예수의 가르침을 좇는다는 이들이 예수를 좇는다는 핑계로 울타리를 쳐놓고 너와 나를 가른다. 예수를 믿는다는 저희끼리도 편을 갈라 서로 멀리하고 미워한다. ― 1장 '사서삼경 모르면 성경도 모른다' 풀이53~54쪽에서

류영모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불교, 유교, 노장 사상 등 동서양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하나의 진리를 보았다. 다만, 하느님이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인 얼(성령)을 공자는 덕(德)이라 하고, 석가는 법(法)이라 하고 노자는 도(道)라 하고, 예수는 얼[靈]이라고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똑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얼나(참나)'로는 예수, 석가, 공자, 노자가 하나로 같다. 기독교, 불교, 유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보내주신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으면 우리도 하느님 아들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거듭나지 못하여 얼나를 모르는 이들은 예수 다르고 석가 다르고 노자 다르고 공자가 다르다. 그래서 예수를 좇는 이는 예수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류영모에겐 예수와 석가가 모두 스승이었다.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의 스승이다

류영모는 석가와 예수는 내가 누구이며 어떤 길로 살아갈 것인가를 깨달은 스승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석가와 예수를 절대시하고 우상시하는 것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 류영모는 예수를 큰 스승으로 여기며 예수의 참 말씀을 따르고자 하였다. "내게 선생이라고는 예수 한 분밖에 없다. 예수를 선생으로 아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사뭇 다르다."(《다석어록》)

정신이 어려서는 자기가 좇는 예수가 제일이라거나 석가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이 더 자라면 예수와 석가가 같다는 것을 안다. 류영모는 예수와 석가는 우리가 본받을 스승이요 언니라고 하였다. 예수와 석가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와 석가도 하느님을 신앙한 이들이다. 우리도 예수와 석가처럼 하느님을 신앙하면 된다. 예수와 석가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말고 예수와 석가의 하느님(니르바나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배타적이고 근본주의적 신앙은 아직 정신이 덜 자란 유치한 단계에 머문 것이다. 여기에는 거짓 목자들이 이기심으로 근본주의적 배타심을 조장하고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 교회의 신자들이나 사찰의 신도들이 주일마다 황금알을 낳아주기 때문이다. 거짓 목자들은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다른 곳에 한눈팔지 못하게 세뇌를 하고 최면을 걸고 코를 꿰고 멍에를 채우는 것이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자각한 자율 신앙인이다. 자각 신앙인은 교회나 사찰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 목자들은 신도들을 타율 신앙으로 묶으려 한다. 그리고 병을 고치고 미래를 점치고 복을 빌어주는 샤먼 행위로 신도들을 미혹케 한다. 그들은 얼나의 깨달음을 모를 뿐 아니라 얼나의 깨달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 18장 '바르게 읽어야 마음이 깨입니다' 풀이453쪽에서

류영모는, 예수는 그 자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얼나를 깨닫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이라고 보았다. 예수는 자신이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체험을 사람들에게 일러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예수를 하느님의 외아들로 부르며 신으로 절대시한 것이다. 류영모는 "사람을 숭배하여서는 안 된다. 그 앞에 절을 할 것은 참되신 하느님뿐이다. 종교는 사람을 숭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바로 하느님으로 깨닫지 못하니까 사람더러 하느님이 되어 달라는 게 사람을 숭배하는 이유다. 예수, 석가를 하느님 자리에 올려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다석어록》)라고 일갈하였다.

이름만으로 구원한다는데, 그저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지요! 뜻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 세상엔 명예만 팔아먹어요. 다른 것도 이름만 쳐들어요. 이 세상이 그렇지, 영원한 생명의 하늘나라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뜻이지! 오직 뜻입니다! 오직 뜻이 반듯해야 합니다. 뜻 하나입니다. …… 또 불교에서는 이렇게 모였을 때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라는 걸 함께 부르는데, 열 번 스무 번 거듭 부릅니다. '천상천하무여불' 이런 식으로 부르는데,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죄다 해요. 대단히 중요한 거지요! 하늘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부처만 한 이가 없다. 그것을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해요. 다 같이 그렇게 해요. 그걸 듣고는 난 빙긋빙긋 웃음이 나오기만 해요. 기독교에서 "천하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구원 얻지 다른 이름으로 구원 못 얻는다."고 하지요. 난 그 소리도 아니라는 거예요. 난 아니에요! 다른 뜻으로는 영원한 생명이 자라지 못한다는 거예요. 꼭 한뜻이라야 해요. 예수가 뜻 먹은 영원한 생명의 뜻, 오직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그 뜻을 가져야 해요. 영생하는 나라, 우리 아버지의 나라, 거기를 가는 거지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억만 번 예수를 불러보세요. 쓸데없습니다. ― 6장 '오직 뜻이 반듯해야 합니다'146~147쪽에서

죽음이란 몸 옷을 벗고 위로 올라가는 것 다석의 죽음 강의

1971년 동광원 강의에서 당시 81세의 고령이었던 류영모는 '죽음'에 관해 자주 언급한다. '오늘 하루살이(一日一生)'의 철학으로 잠자는 것과 죽음을 똑같이 보고 하루를 평생으로 여기며 살았던 류영모는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

종교의 핵심은 죽음이다. 죽는 연습이 철학이요 죽음을 이기자는 것이 종교이다. 죽는 연습은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기르기 위해서다. 몸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요 몸이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는 죽지 않겠다고 야단쳐도 안 되고 몸이 죽으면 끝이라고 해도 안 된다. 몸나가 죽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몸나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이다. 몸은 죽어도 얼이 하느님께로 간다고 믿는 것이다. 얼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하느님의 생명이라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나는 몸나의 죽음 맛을 보고 싶다. 그런데 그 죽음 맛을 보기 싫다는 게 뭔가? 이 몸은 내던지고 얼은 들려야 한다. 땅에서 온 몸은 땅에 떨어지고 위에서 온 얼은 들리어 하느님께로 올리운다. (류영모 말씀) - 9장 '죽음이란 몸 옷을 벗고 올라가는 것' 풀이237~238쪽에서

류영모는 괴롭고 허무한 몸의 삶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보았다. 예수가 말한 영원한 삶도 몸나가 아니라 얼나를 말한 것이다.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얼의 부활, 얼의 영생을 말한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죽는 것을 너무 겁내지 말아요. 몸이 죽는 것을 걱정하는 걸로 우리의 얼생명이 자라지 못해요. 할 수 있는 한 죽지 않고 살기만 해야겠다는 것은 육체적인 생각이에요. 그것 다 내버려요. 그리고 얼나로 솟나는 믿음의 삶, 하느님 아들의 삶길을 밟아 나가요. 그게 믿음이에요. 믿음에는 죽음에 겁이 없어요. …… 제나로는 아주 죽어버려요. 그럼 영원히 사는 얼나 쪽으로만 전심전력해 나가요! 길이 험하고 끄트머리 문도 작지만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봐요. 실상 걸어보면 걸리는 게 조금도 없는 길입니다. - 13장 '생각이 깨고 또 깨는 것이 거듭남이다'322쪽에서

제나는 죽어야 하는 것이지 건져낼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얼나)으로 살면 그만이다. 멸망할 생명은 멸망하게 내버려 두지 그것을 구원하려 애를 태울 필요가 없다. 얼나로 솟난 참사람은 몸나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 땅 위에 내 발바닥이 땅바닥에 닿고 사는 동안에는 흙을 떠나지 못합니다. 흙에 얹혀 흙(몸)에 담겨 있다가 이걸 벗어버리고 하느님 아버지께로만 올라가게 되면 마지막 그때는 이것(몸)이 다 벗어지는 거예요. 지금은 여기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이 몸에 갇힌 게 더러운 것 같지요? 아니에요. 우리가 이 몸속에 담겨 있다가 속알(얼나)을 이 속에서 길러 속알이 온전한 뒤에 확 저절로 벗어져요. 벗어지면 위로 솟구쳐서 하느님 아버지 계신 곳에 갑니다. 자기도 모르게 몸 옷이 스르르르 벗어져요. 자기도 모르게 숨이 집니다. 이 몸속에 정말 정말 속알을 길러 하느님 아들이 된다면 그게 어디로 갈까요? 한 길밖에 없어요.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것뿐이지요. - 9장 '죽음이란 몸 옷을 벗고 올라가는 것'226~227쪽에서

제나를 버리고 얼나로 솟나야 한다 —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깨달음

기독교는 오랫동안 바울로가 만들어낸 육체 부활 신앙, 타율 신앙, 교리 신앙의 틀에 갇혀 있었다. 바울로의 교의는, 동정녀 탄생을 믿어라, 예수의 육체 부활을 믿어라, 예수가 흘린 피로 속죄됨을 믿어라, 예수가 심판하러 오는 것을 믿어라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완전히 타율적인 신앙이다. 류영모는 기독교 교회가 예수의 영성 신앙을 가르치지 않고 바울로의 속죄 신앙을 맹신하는 것을 알고는 8년 동안이나 다니던 교회를 떠났다.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으나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사도신경을 욀 필요가 없어요. 사도신경 토막토막을 내가 모르지 않습니다. 나도 연동교회에 다닐 때는 왼 적도 있어요. 지금은 안 외어요. 욀 만한 값어치가 없어요. 그걸 믿는다며 쪼르르 왼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 그 한마디 한마디가 그때 그 사람들이 사는 데 생명의 신조로 삼은 것입니다. 그런데 뒤에 사람들이 본떠 그걸 쪼르르 외고 외고 하는데 그것으로 무슨 자기의 얼생명이 커지기라도 하나요? 그런 일 없어요. 난 사도신경을 안 믿어요.

― 16장 '사도신경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381~382쪽에서

류영모는 성경과 함께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공부하고 일상에서 철저히 금욕적인 성인의 삶을 실천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생사(生死)와 애증, 욕망의 노예인 제나[自我, ego]로 죽고 진정한 '나'인 얼나로 솟나야 한다'는 것이다. 제나란 물욕, 식욕, 정욕을 지닌 이기적인 자아를 가리킨다. 얼나는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이 몸뚱이는 멸망한다. 없어져야 할 것이니까 없어지는 것이다. 신앙 생활은 회개(메타노에오)로 시작되는 것이다. 메타노에오란 몸이 참나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몸나(육체)는 죽어도 얼나는 죽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 회개다. 거짓 나인 몸을 참나로 착각하는 것이 멸망이다. 이 몸은 가짜 생명의 탈을 쓴 것이다. 이 몸나를 버리고 얼나로 솟나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게 영원한 생명이다. 하느님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몸나로는 죽고 얼나로 솟난다는 뜻이다. (류영모 말씀) ― '길잡이말'17쪽에서

우리말 속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 우리말과 글로 철학하기

한학(漢學)의 대가였던 류영모는 한자 한 글자에 철학 개론 한 권이 들어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른바 '파자(破字)'를 하여 한자 생성 원리를 밝혀 거기서 철학을 캐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아끼게 되었다. 류영모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씨알 가라칠 바른소리'라고 순 우리 말로 옮겨 썼다. 그리고 한글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재미있고 유익한 말을 만들었다. '제나', '얼나', '씨알' 같은 말 역시 우리 말과 글 안에 숨은 놀라운 뜻(의미)과 올(이치)을 찾아내고 밝히기를 즐겼던 류영모가 만들어 쓴 말이다. 우리 말로 철학하기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당장 우리가 자꾸 거듭나서 사는 것을 알 수 있는 게, 아이들이 철 안 났다고 할 적에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조금도 자라지 않고 속알이 달라붙어 있느냐고 합니다. 속알은 우리가 길러야 하는 것인데, 자라지 못했다는 것은 달라붙었다는 거예요. 말라붙었다는 거예요. 나이가 몇 살인데 속알이 아주 달라붙어 속알머리가 없어. 속알이 어찌나 자라지 않는지 속알머리가 없이 자라기는커녕 말라빠졌구나. 이렇게 되면 기르는 부모가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너는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젠 철날 때가 됐는데, "저런 못난 자식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다 어떻게 된 말입니까? 못났다면 어머니 뱃속에서 아직 못 나왔어요? 그 말을 가만히 들어보세요. 이상한 말이 아닙니까? 그건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지요. 나이가 몇 살인데 못난 자식이라니, 이미 난 사람더러 어찌 못났다고 해요? 못생긴 자식이라, 못난 자식이라 속알이 달라붙었다고 해요. 속알이 달라붙으면 뭡니까? 우리가 얼생명을 지키면서 속알을 길러야 해요. 자꾸 속알을 길러야 합니다. ― 13장 '생각이 깨고 또 깨는 것이 거듭남이다'317쪽에서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과 다석 류영모 — 간소한 삶의 철학

다석 류영모는 한국 기독교 최초의 자생적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동광원을 창설한 이현필은 자급자족하면서 노동과 생활이 곧 기도가 되는 삶을 실천했다. 수많은 고아들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폈으며 걸인과 창녀를 천사처럼 귀하게 대한 그에게 '맨발의 성자'라는 이름이 따랐다. 그런데 이현필은 사도신경에 입각한 속죄 신앙(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보혈로써 속죄 받는다는 십자가 신앙)을 믿는 정통 신앙인이었으며 동광원의 수녀와 수사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류영모는 예수를 신앙의 대상이 아닌 스승으로 여기며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으로 돌아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자각 신앙인이었다. 이러한 류영모의 비정통 자각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동광원 사람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현필은 고민 끝에 류영모를 강사로 초빙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물심양면으로 동광원을 후원하던 서울 중앙 YMCA 총무 현동완이 류영모를 따르고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류영모의 사상은 그들이 지향하는 금욕 생활이 옳다는 것을 신앙적, 철학적으로 지지해주었기 때문이다. 셋째 류영모만큼 신앙이 깊고 실천하는 스승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 1장 '사서삼경 모르면 성경도 모른다' 풀이54쪽에서

류영모가 동광원을 아낀 까닭을 살펴보면 류영모의 신앙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광원 사람들은 지극히 가난하여 간이 생활(簡易生活)을 할 수밖에 없었다. 류영모는 그것을 좋게 보았다. 동광원 사람은 스스로 일해서 먹고사는 자급자족 생활을 하였고 고아나 장애자를 돌보는 봉사 생활도 하였다. 심지어 병원에서 의사들이 돌보아야 할 결핵 환자 수용소를 마련해 돌보았다. 마지막으로 가정을 버리고 나와 금욕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곧 간이 생활, 노작 생활, 봉사 생활, 금욕 생활에 이어 신앙 생활까지, 이 다섯 가지가 류영모의 마음에 꼭 맞는 삶이었다. 그 사람들은 류영모가 바라는 이상적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순 우리말로 하면 바로 ① 줄임삶, ② 일함삶, ③ 섬김삶, ④ 그늠삶, ⑤ 믿음삶이었다.




앎과 삶이 하나였던 참사람 다석 류영모(1890~1981)

다석 류영모는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시대를 앞선 종교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6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 음 세례를 받고 몇 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하는 등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 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알(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류 영모는 생활에서도 성인의 삶을 실천했다. 51세에 믿음에 깊이 들어가 삼각산에서 하늘과 땅과 몸이 하나로 꿰뚫리는 깨달음의 체험을 하였다. 이때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세 끼를 합쳐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이라 하였다. 얇은 나무판에 홑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잤으며, 새벽 3시면 일어나 정좌하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했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거친 옷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가족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1981년 2월 3일 18시 30분, 이 땅에서 90년 10개월 21일을 살다가 숨졌다.

생 전에는 함석헌의 스승으로만 알려졌으나, 지금은 독특한 신관과 인생관을 지닌 철학자로서 다석 류영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 다석학회가 만들어진 데 이어 2007년 10월 5일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철학자들과 종교학자, 재야 학자들이 모여 ‘재단법인 씨알’을 만들었다.

 

풀이 박영호(1934~)

1934년에 태어난 박영호는 공업학교를 다니던 중 6․25가 일어나 열일곱 살에 헌병대에 징집되었다. 살벌한 전장에서 그는 죽이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 죽은 사람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밤이 되어 눈을 감아도 해골과 시체들이 눈앞에 떠다녔다. 그렇게 신경쇠약에 걸려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며 방황하던 중 톨스토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톨 스토이 전집을 다 읽고 난 뒤 그는 우연히 <사상계>에서 함석헌 선생의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함석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톨스토이 사상에서 감화를 받은 사람임을 알아본 박영호는 곧바로 함석헌에게 편지를 쓰고 이후 40~50통의 서신을 교환했다. 1956년 천안에 농장을 마련한 함석헌 선생이 농사짓고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지내자고 청하자 그곳으로 곧장 달려가 스승과 함께 생활하였다. 낮에는 과수원에 똥거름을 주고 밭을 매는 고된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성경, 톨스토이, 사서삼경, 고문진보, 간디 자서전을 같이 읽고 토론한 시간이 3년이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농장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겐 영적으로 새로 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되었을 때, 그를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줄 새로운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1959 년 함석헌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 예수”라고 말하며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던 다석 선생처럼 제자 박영호도 농사짓는 일을 양심적으로 참되게 사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는 경기도 의왕에 6천 평 농장을 개간해 밭을 일구면서 짬짬이 책을 읽고,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YMCA 연경반(硏經班)에서 류영모의 강의를 듣고, 댁으로 찾아가 다시 가르침을 받으며 5년의 세월을 보냈다.

1965 년 어느 날 스승이 ‘단사(斷辭)라는 말을 꺼냈다. 이젠 스승을 떠나 독립해 혼자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스승을 떠난 그는 5년간 이를 악물고 혼자서 공부해, 정신이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을 세 가지로 정리한 그의 첫 책 《새 시대의 신앙》을 출간했다. 그 무렵 류영모 선생으로부터 ‘졸업증서-마침보람’이라 쓰인 봉함엽서를 받았다. 다석 류영모의 참제자로 인정한 것이었다. 스승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했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그 뒤 류영모는 박영호에게 자신의 전기 집필을 맡겼다. 1971년부터 준비한 다석 전기는 1984년에야 책으로 나왔다. 스승이 읽은 책을 모두 독파하고, 스승이 살아온 이야기를 구술받고, 스승이 평생 써온 일지를 필사하면서 10년 자료를 준비한 후 스승이 돌아가신 1981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만 13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박 영호는 지금껏 다석 류영모에 관한 책을 열 권 넘게 써 스승을 세상에 알렸다. 류영모 전기인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외에도 《다석 류영모 어록》《다석 류영모 명상록》《다석 류영모의 얼의 노래》《다석 마지막 강의》 등이 있고, <문화일보>에 다석 사상에 관한 글을 325회 연재한 후 이를 묶어 〈다석사상전집〉(전 5권)을 간행하였다. 또한 《잃어버린 예수 - 다석 사상으로 읽는 요한복음》《메타노에오, 신화를 벗은 예수》《다석 류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등을 썼다. 지금 그는 다석 사상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절실한 ‘다석 류영모 낱말 사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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